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이 8세 (문단 편집) == [[카스티야의 블랑카]] == 1200년의 르굴레 조약으로 루이는 [[존 왕]]의 조카 중 하나와 결혼이 결정되었다. 존 왕의 모후인 [[엘레오노르 다키텐]]은 [[카스티야 왕국]]의 국왕 [[알폰소 8세]]에게 시집을 보낸 차녀 엘레오노르의 장녀 [[우라카]]와 차녀 블랑카 중에서 루이의 배필를 간택했다. 14~15세기에 스페인의 역사학자가 블랑카가 언니인 우라카의 외모에 뒤떨어졌으며 엘레오노르 다키텐이 우라카가 블랑카보다 아름답다는 걸 인정했다고 적었다. 그의 역사서에 따르면 [[필리프 2세]]의 사절이 가장 아름다운 딸을 간택해야 한다고 당부했으나 프랑스에 온 건 블랑카였는데 엘레오노르 다키텐은 우라카가 이름이 못생기고, 블랑카가 이름이 아름답지 않냐고 설명했다.[* 여담으로 당대에 신부가 시집을 가면 신랑의 문화적 정서에 맞춰 개명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. 필리프 2세의 친여동생 [[프랑스의 아녜스]]도 동로마로 시집갔을 때 '안나'로 개명했다.][* 엘리슨 위어를 비롯한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의 전기문을 펴낸 작가들은 엘레오노르의 신화를 좆아 그녀가 블랑슈의 인품이 프랑스 왕비 자리에 더 적합했다고 믿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즐겨쓰는 편이다.] 루이 8세와 [[카스티야의 블랑카|블랑카]]는 서로를 끔찍이 사랑했다고 전해진다. 둘 사이에서 총 12명의 자식들이 출생했다. 그러나 첫 딸 블랑슈와 쌍둥이 형제 알퐁스와 장, 9남 스테판은 태어난 직후 사망했고 장남 필리프와 6남 장 트리스탄, 8남 필리프 다고베르는 어린 나이에 사망하여 결과적으로는 5명만이 성인이 되었다, 11남 샤를에 대해서 지오바니 빌라니가 이렇게 말했다. "특출난 거구에 머리칼과 수염이 검정색이며 피부색이 짙고 코가 남자다웠다Dal macicho naso." 앙주 백작위를 상속받고 [[시칠리아 왕국]]의 카를루 1세로 즉위했다.[* 샤를 1세는 모계를 통한 앙주 가문의 일족들을 닮아 음유 시인을 후원하고 음악과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. 카페 직계 일족들은 음유 시인과의 교류를 향유하지 않았던 점이 특징적인데 상당히 대조적인 부분이다.] 4남 루이는 "키가 크고 호리호리하고 늘씬하고 광채가 흐르는 금발이고 피부가 하얗고 천사같이 아름다웠다." 프랑스 왕국의 [[루이 9세]]로 즉위했고, 형제들 중 모후 [[카스티야의 블랑카|블랑카]]의 광적이고 집착적인 사랑을 받았다. 남편을 일찍 여읜 블랑카가 남편을 빼닮은 루이 9세를 그 대신으로 의지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. 1226년에 루이 8세가 유언을 통해 아내인 [[카스티야의 블랑카|블랑카]]를 루이 9세의 섭정으로 명령하고 급사했다. 블랑카는 루이 9세의 치세 초기 [[위그 카페]] 시절로 돌아가 프랑스 왕을 선거로 선출하자는 '''군벌들의 반란을 성공리에 쳐부수고''' 루이 9세가 권력을 장악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